奥巴马访中访韩(转自韩国中央日报)

首脑外交里包括“硬外交”和“软外交”。“硬外交”包括了重要的政治、外交、经济上的热点问题。“软外交”则脱离热点问题的范畴,是主人和客人之间人性化的、文化上的交流。从影响上来看的话,“硬外交”重要而且实际,但是比起“硬外交”来,世界上很多平凡的市民们更关心“软外交”。这是因为“软外交”比“硬外交”有意思。“硬外交”是诸如首脑会晤、记者招待会、晚宴等,但是“软外交”却可于大学讲堂、街道、文化遗产、音乐会等地随处可见。要想使首脑外交在两国取得同样的成功,“软外交”也和“硬外交”一样是必不可少的。


奥巴马对中国为期4天的访问中,“软外交”的内容也很丰富。奥巴马见到了他同父异母的弟弟恩德桑乔)。看着恩德桑乔,世界人民可以再次确认奥巴马的非洲血统。奥巴马的弟媳是中国人,白宫和中国竟然是亲家。人们一定能感觉到“人类在未来会更加混合”。奥巴马登上了万里长城。在他转过来的肩膀之后,万里长城徐徐展开,还会有照片比这一场面更能彰显两国集团(G2)的时代吗?看着这“在月球上都能看到”的庞然大物,人们一定真切地感受到了中国的气势。在上海,奥巴马还同志气满满的大学生举行了面对面的谈话,这是同中国进行的对话。


如果将奥巴马在韩国的20个小时看作是“硬外交”的话,某种程度上也算是一种成功。在会谈和见面会上,两位首脑对韩美同盟赞不绝口。比起金大中卢武铉政府,算是“友情的华丽恢复”。还出现了美国总统特使访朝这一偌大的新闻。


但是如果从“软外交”来看,奥巴马的访韩却是空洞无物的。虽说时间也有些短,但是奥巴马走的路线很单调无味。奥巴马在晚上乘飞机抵韩,美美地睡了一觉。第二天与韩国总统举行会谈并共进午餐。在韩国逗留的20个小时内,他所见到的一般民众就只有美国大使馆的职员和驻韩美军了。他见过美军之后就匆匆回回美国去了。他说第二天有女儿学校的演出。他就这样走了。


当然,韩国和中国不同。虽然中国是G2,但是韩国刚刚跻身G20。韩国没有恩德桑乔,也没有万里长城,即使这样,韩国仍然是个很特别的地方,是美国60年的同盟国,这样的韩国,奥巴马是第一次访问。再加上与其他任何国家相比,奥巴马在韩国是大受欢迎的人气明星。到现在为止,与奥巴马有关的书共出了50余种,都是关于他的著作、评传、演讲文集、漫画书等。《将自卑转化为希望的奥巴马的故事》售出将近30万部。他本人所著的、理解起来有些难度的2本书也各自售出5万多册。父母们希望子女能向奥巴马一样向着自己的梦想前进;青少年们为了能在面对泰山压顶般的学习和人生中的疑问时寻找解答而翻阅奥巴马的书。


念及韩国人民心底的一片情意,奥巴马不应该亲自站到韩国人民面前吗?大学讲堂也好,孤儿院也行。“母亲离过两次婚,没关系吧”,“是怎么克服了身为黑人的那些困难的啊?”,“毕业于名牌大学本来可以赚很多钱的,为什么去了芝加哥贫民区呢?”……如果奥巴马能用自己独有的语言来解答韩国青少年的问题的话,该是一次多么令人感动的沟通啊。朝鲜问题也是如此。正值柏林墙倒塌20周年纪念,如果能走入非武装地带(DMZ),宣称“如果能放弃核武器,打破障碍的话,我们将会提供帮助的”的话,该是多么壮观啊。1993年克林顿曾去了板门店的“不归桥”,2002年布什曾在现场直播的情况下在都罗山站进行了演讲。



정상외교에는 하드(hard)와 소프트(soft)가 있다. 하드는 중요한 정치·외교·경제적 이슈를 다루는 것이다. 소프트는 이슈의 울타리를 벗어나 주인과 손님이 인간·문화적으로 섞이는 것이다. 영향으로 보자면 하드가 중요하고 현실적이다. 그러나 세계의 많은 평범한 시민은 하드보다 소프트에 관심이 많다. 하드보다 소프트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하드는 정상회담·기자회견·만찬 같은 것이다. 그러나 소프트는 대학 강당·거리·문화유산·음악회 등 어디에나 있다. 정상외교가 양국에 똑같이 성공적이 되려면 하드만큼 소프트가 필수적이다.


오바마의 중국 3박4일은 소프트도 풍성했다. 오바마는 이복동생 은데산조를 만났다. 세상 사람들은 은데산조를 보면서 오바마의 아프리칸 혈통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오바마의 제수(弟嫂)는 중국인이다. 백악관과 중국이 사돈이라니…. “인류는 앞으로 더 섞일 것”이라고 사람들은 느꼈을 것이다. 오바마는 만리장성에 올랐다. 돌아선 그의 어깨 너머로 장성이 펼쳐졌다. 이 사진만큼 G2 시대를 웅변하는 장면이 있을까. ‘달에서도 보인다’는 대물(大物)을 보면서 사람들은 중국의 기세를 절감했으리라. 상하이에서 오바마는 야심 찬 대학생들과 타운 홀 미팅도 가졌다. 중국의 미래와 대화한 것이다.


오바마의 한국 20시간은 하드로 보자면 어느 정도 성공이었다. 회담과 회견에서 두 정상은 한·미 동맹을 찬양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비하면 ‘우정의 화려한 회복’이었다. 미국 대통령 특사의 방북이라는 큼지막한 뉴스도 나왔다.


그러나 오바마 방한은 소프트로 보자면 허전한 것이었다. 시간도 짧았지만 오바마의 동선(動線)은 무미건조했다. 오바마는 저녁에 비행기를 타고 들어와 잠을 푹 잤다. 이튿날 한국 대통령과 회담하고 점심을 같이 먹었다. 체류 20시간 동안, 그가 만난 보통 사람은 미대사관 직원과 주한미군이 전부였다. 그는 미군들을 만나고 서둘러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튿날엔 딸의 학교 연극이 있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다녀갔다.


물론 한국과 중국은 다르다. 중국은 G2지만 한국은 이제 막 G20에 들어갔다. 한국엔 은데산조도 만리장성도 없다. 그러나 그래도 특별한 곳이 한국이다. 60년 동맹이고 그런 한국을 오바마는 처음으로 방문하는 것이다. 게다가 어느 나라보다 한국에서 오바마는 인기 스타다. 지금까지 오바마에 관한 책이 50여 종이나 나왔다. 그의 저서와 평전·연설문집·만화책 등이다. 『열등감을 희망으로 바꾼 오바마 이야기』는 30만 부 넘게 팔렸다. 그가 쓴 어려운 책 2권도 각각 5만 부가 넘었다. 부모는 자녀가 오바마처럼 꿈을 향해 전진하기를 바라고, 청소년들은 태산 같은 공부와 삶의 의문 속에서 길을 묻고 싶어 오바마 책을 읽었다.


한국인의 마음에 깔린 애정의 자락을 생각하면 오바마는 직접 한국인 앞에 섰어야 하지 않을까. 대학 강당도 좋고 고아원도 좋다. “어머니가 두 번이나 이혼했는데 괜찮았나요” “흑인의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냈습니까” “명문대를 나와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는데 왜 시카고 빈민가로 갔나요”…. 한국 청소년의 질문에 오바마가 자신만의 언어로 답했다면 얼마나 감동적인 소통이었을까. 북한 문제도 그렇다. 마침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주년이다. 비무장지대(DMZ)에 들어가서 “핵을 버리고 장벽을 부수면 우리가 도와주겠다”고 선언했다면 얼마나 웅변적이었을 것인가. 1993년 클린턴은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 갔다. 2002년 부시는 생중계되는 가운데 도라산 역에서 연설했다.


오바마의 소프트는 왜 그리 허전했던 것일까. 한국 외교력의 한계인가. 아니면 미국의 배려가 부족한 것일까. 부족하다면 혹시 아프간 철군이나 ‘소극적인 재(再)파병’ 같은 데에 미국이 불만이 있는 건 아닌가. 오바마에 비쳐진 한국인은 ‘오직 바라보는 마음’인가.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김진 기자 [jinjin@joongang.co.kr


奥巴马的“软外交”为何如此空洞无物,是韩国的外交能力有限吗,要不然就是美国考虑不周?如果是美国考虑不周的话,那么是因为韩国的阿富汗撤军或者“消极地再派兵”令美国心生不满吗?韩国人民眼中的奥巴马“只是远远地守望的心思”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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